이 영화, 제목이 참 길다.
주변 지인들의 호평을 받는 영화가 있다기에 물어본 제목은 참 길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니 머릿속으로 직역을 해보니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제목이다. '모든 것, 모든 곳, 동시에' 라니 무슨 내용을 다루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극장에서 영화의 도입부를 보며 관객들은 감을 잡아간다. 1부, 에브리씽으로 시작이 되는 이 영화는 제목의 단어 순서대로 총 3부작 구성이다. 서로 열렬히 사랑했지만 미국에 이민온 후 바쁘고 고된 생활에 찌들어 날이 선 일상적인 대화만이 오가는 부부인 에블린(양자경)과 웨이먼드(키 호이 콴)의 이야기가 1부의 주된 이야기이다. 에블린 부부는 미국에서 동전 세탁소를 운영 중인데 쉴 틈 없이 반복되는 격무와 여자 친구와의 교제로 에블리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딸 조이(스테파니 수),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든 에블린의 아버지 보살피기 등의 막중한 임무가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가장 힘든 고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국세청의 세무조사였다. 극 중 에블린은 책상 가득 쌓인 영수증 앞에 앉아 무척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이 때문에 가족들은 그녀의 눈치를 보게 되고 가족 간의 진심 어린 소통은 단절되어간다. (주의 : 이후 내용부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B급 영화의 탈을 쓴 다니엘 콴의 수작
영화의 내용은 에블린 부부가 국세청으로 향하며 관객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가 된다. 세무조사를 받기 위한 층으로 에블린과 함께 이동하던 웨이먼드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짧은 순간 동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한다. 외모는 기존의 웨이먼드와 동일하지만 재빠르고 기민한 말투와 몸짓의 또 다른 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수수께끼의 말과 메모를 남기고 본래의 순진무구한 웨이먼드로 돌아간다. 에블린은 순간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졌지만 이내 깐깐하고 무시무시한 국세청 조사관 디어드리를 만나 세탁소 사업의 투명성을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에블린의 바람과 다르게 디어드리는 세금 처리의 불분명함을 지적하며 부부를 난관에 빠뜨리고, 이때 에블린은 간절한 마음으로 이상한 웨이먼드가 남긴 메모에 따라 행동한다. 결국 다시 만난 이상한 웨이먼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세상은 다중우주로 구성이 되어있고 본인은 다른 세계에서 온 웨이먼드라는 점, 사악한 악에 맞서 구원을 해줄 에블린은 지금 이 세계에 있는 에블린이라는 점 등이다. 다시 혼돈에 빠진 에블린과 이와 비례하여 절망으로 치닫는 세무조사, 갑자기 강력한 프로 레슬러로 변모하여 공격을 가하는 다른 세계에서 온 국세청 조사관 디어드리의 등장은 이 영화를 B급 액션 코미디 장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후 B급 코미디 장르의 향연은 계속된다. 알파 웨이먼드(이상한 웨이먼드)의 가방 격투 장면과 거대한 악의 상징 조부 투파키의 그다지 무섭지 않은 공격, 쿵후 고수가 된 에블린의 난투극은 옛 중국 영화들인 '장강 7호', '소림 축구'가 떠오르는 다소 과장되고 유머러스한 연출이다. 그러나 정신없고 우스꽝스러운 1부가 마무리되고 2부 '에브리웨어'로 이야기가 이어지며 다니엘 콴 감독이 웃음 속에 숨겨둔 메시지가 드러난다.
돌고 돌아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바로 '가족'
조부 투파키이자 에블린 부부의 딸인 조이의 혼란과 내면의 슬픔을 비로소 깨닫게 된 에블린은 일순간 조이와 마찬가지로 삶의 부질없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내 에블린은 사랑하는 남편 웨이먼드를 통해 삶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인 '친절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이를 다중우주에서 온 다양한 적들에게 실천한다.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던 너구리 요리사 '라따구리'에게는 너구리를 함께 찾아가는 선행을 베풀고, 먼 우주에서 연인이었던 디어드리에게 발로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내면의 우울에 갇혀있던 조이, 조부 투파키에게는 사랑하는 엄마로서 끝까지 손을 잡아주며 조이만의 블랙홀인 검정 베이글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그녀를 단단히 지탱해준다. 이 장면에서 에블린을 뒤이어 지탱해주는 에블린의 아버지와 사랑하는 남편 웨이먼드의 모습이 연출되는데 다니엘 콴 감독이 담고자 한 메시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내는 존재인 가족의 따뜻함이 관객에게 전달이 되며 이야기는 3부 '올 앳 원스-동시에(한꺼번에)'를 향해 나아간다.
평소 B급 코미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무척 즐겁게 웃은 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철학과 감동으로 마음이 따뜻해질 영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지만 B급 코미디 취향이 아닌 관객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130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큰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 본격 출산 장려 가족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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